2차 세계대전 운송기 C-47,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얽힌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운송기로 크게 활약한 쌍방 프로펠러 운송기 C-47. 우리나라 공군 최초 수송기로 기록되기도 한 모델입니다. 전쟁 당시 연합군 보급 작전의 중심에서 역할을 다했고, 침공작전에서는 공수부대의 강하나 글라이더 비행의 주력기체로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이 비행기 한 대가 지금 여의도공원에 전시되어 있지요.
<2차 세계대전 운송기 C-47,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얽힌 이야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항복을 했지요.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우리 조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탔던 비행기가 C-47입니다. 이 비행기가 여의도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이유는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세우게 되었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다시 손봤다 합니다.
C-47은 1945년 8월 18일 여의도에 착륙하게 되는데, 당시 경성비행장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광복군이었던 정진대원 이범석, 김준엽, 노능서, 장준하 선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항복은 했지만, 여전히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연합군의 포로와 접견을 요구했지만, 일본군은 거부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다행히 큰일은 터지지 않았다 하네요.
오랜 투쟁 끝에 C-47을 타고 조국으로 돌아오는 광복군의 심정. 그리고, 그 감회와 황량한 조국을 본 소감과 안타까움. 수많은 감정들이 이 비행기에 담겨 있습니다. 아래 당시 이범석 장군이 비행기에서 쓴 글을 공유합니다.
보았노라 우리 연해의 섬들을
왜놈의 포화 빗발친다 해도
비행기 부서지고 이 몸 찢기워도
찢긴 몸 이 연안에 떨어지리니
물고기 밥이 된들 원통치 않으리
우리의 연해 물 마시고 자란 고기들
그 물고기 살찌게 될 테니
이때 경성비행장 책임자였던 시브자와 대좌, 우에다 히데오 소좌가 이들 독립군에게 맥주와 사케를 무릎 꿇고 권했다 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예의였지요. 하지만, 이어진 실랑이 끝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다시 비행기를 돌려 중국 산동성으로 돌아갔다 합니다.
목숨을 내놓고 싸우려는 생각으로 C-47을 탔던 독립군들을 말린 이는 미국의 Willis H. Bird 중령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군사사절단 이름으로 왔기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던 독립군들.
이제는 오랜 역사의 한 장면이지만, 후손들이 잊지 않고, 그 예전의 자리에 그대로 C-47을 전시해놓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기억해야 하고, 배워야 하며, 그를 통해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참고해야 하고요.
서울 여의도에 가면 여의도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의 한켠에 이 C-47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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